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김애란 단편 소설집 "비행운" 중 "서른" 중에서...)
송혜교, 강동원 주연의 영화가 있다. 두근두근 내인생.. 송혜교만 봐도 좋고, 강동원만 봐도 그냥그냥 좋은 영화였다.
영화도 나름 재미있었지만, 소설은 진짜진짜 더 재밋다.
원작자 김애란 소설가는 천상 작가다. 결과만 보면 엄청나게 슬픈 이야기인데 읽는 내내 계속 미소를 짓게 하는 능력이 있으니까.
김애란 소설을 읽으면서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야기가 끝나가는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페이지 숫자가 줄어드는 게 정말 싫은 방학같은 글들이다.
장편소설이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김애란의 단편 소설을 읽기를 권한다.
가장 최신작인 비행운을 강추한다.
단편소설집 비행운은 다중의 의미가 있다. 비행기가 지난간 흔적이 있는 구름인 飛行雲의 의미가 있고, 행운이 아니라는 非幸運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김애란 작가는 아마도 두가지를 모두 포함한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현대소설은 현대인의 고독감과 슬픔, 좌절을 주로 이야기한다. 대부분 어둡고, 비극적인 결말일 수 밖에 없다.
김애란 소설의 근저도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담아낸다.
하지만, 김애란 소설이 다른 소설가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슬프지만, 외롭지만, 힘들지만,
왠지 슬프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은 외롭지 않을 것 같은 힘들지 않을 것 같은 보이지 않은 희망을 준다.
그래서, 결론은 비극이지만, 슬픔과 고독과 어려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작은 자극을 주는 감동으로 마무리가 된다는 것이 너무너무 좋다.
무엇보다 문체가 쭉쭉 읽힌다. 한번 잡으면 한번에 한권을 읽게 된다.
단편 소설집 비행운의 담긴 8개 이야기 속으로 빠져 보시길~
하루하루가 막막한 젊은 청춘들에게, 내일이 힘들게 다가오는 현대인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한다.
1. 너의 여름은 어떠니 "느이들 사람들이 사막에서 뭐로 제일 많이 죽어나가는 줄 아냐? 거야 열사병이지. 아니야. 익사야. 익사"
2. 벌레들 " 그 사각형 안에서 뭔가 희미하게 출렁이고 있는 걸 발견해서였다. 그건 방바닥에 비친 아지랑이 그림자였다. 내 발 아래서 신비롭게 출렁이는 봄기운. 나는 잠시 충만해져 아, 보이지 않는 것에도 그림자가 있구나 감탄했다
3. 물속 골리앗 "부모님이 강산아파트에 들어온 건 20여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이야 낡고 오래돼 흉물 취급받지만 아파트라 하면 뭐든 좋게 보던 때였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아파트를 갖고 싶어 했다. 건물의 아름다움, 건물의 역사, 그런 것은 상관없다. 아파트가 가진 상승의 이미지와 기능, 시세가 중요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괜찮은 사람들은 다 아파트에 살았다. 부모님 역시 그 안에 속하길 바랐다. "
4.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어디. 언제나 어디가 중요하다. 그걸 알아야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있다고. 그녀는 짜이날 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라 했다. 그 말이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줄 거라고. 그다음, 그곳에 어떻게 갈지는 당신이 정하면 된다고."
5. 하루의 축 "사람들은 화장실에서 뜻밖에 많은 일을 했다. 씻고, 싸고, 버리고, 꾸미는 것은 기본이고, 먹고, 울고, 싸우는 일을 비롯해 폭행이나 추행, 폭발물 설치 같은 것까지...."
6. 큐티클 "누구가 나를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만져주고 꾸며주고 아껴주자 나는 아주 조그마해지는 것 같았고, 그렇게 안락한 세계에서 바싹 오그라든채 잠들고 싶어졌다."
7. 호텔 니약 따 "도대체 인간이 이십대에 총명하지 않으면 언제 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을 안고. "
8. 서른 "지금 선 자리가 위태롭고 아찔해도, 징검다리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도, 한 발 한발 제가 발 디딜 자리가 미사일처럼 커다랗게 보였을 좋겠어요."